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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이 11살을 만난다면.플로렌시오 로그/썰 해시 등등 백업 2023. 10. 7. 06:38
아카데미 초대장을 받은 나는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모습보다도 작았다. 어쩌면 내가 그 뒤로 많이 자라서, 더 작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빨래를 두어 번 힘차게 털고 널어둘 때, 소맷자락에서 이상하게 바스락거리는 느낌이 났더랬지.
11살의 나는 낙엽이나 종잇조각이 섞여들어간 것인지를 걱정하며 소맷부리 안쪽으로 손을 밀어넣었는데, 잡혀나온 것은 말끔하게 생긴 편지봉투였다. 아름다운 인장으로 봉인된, 마법사들의 초대장.
마법사가 되고 싶었던 적이라곤 없었지만 그 때의 나는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아닌가? 고민은 하나 뿐이었기 때문에 생각이 그 이상으로 복잡했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까? 어쨌거나, 11살의 나는 변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변하지 않은 채로, 어른이 되고 싶다.' 지금의 나는 조금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어리고 어렸던 꿈.
저 초대장을 받지 못했다면, 어떤 미래의 나는 목소리가 변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목을 아예 망쳐버렸을 수도 있겠지. 그도 아니라면 그냥 변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아예 다른 길을 찾아갔을 수도 있고, 그 길들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11살의 내가 그 초대장을 손에서 놓지 않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11살의 내게는 없지만, 25살의 내게는 있는 것.
"마법사가 되면, 어쩌면,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특기인 바람 마법에, 11살의 내 목소리를 아주 잠깐 흉내낸 말을 실어보냈다. 스스로의 생각인지 아닌지 헷갈릴 수 있을 정도로만. 어떤 계시라고 생각해도 좋고, 스스로 결정했다고 믿어버려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네가, 내가 아카데미에 간다는 것.
11살의 나는 젖은 빨래 사이에 끼어있느라 살짝 눅눅해진 초대장을 들고 있다가 잠시 뒤 집안으로 들어갔다. 가고 싶니? 라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었지."가고 싶어요."
이유는 어찌되었건,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만 흐를 뿐이고 진작에 가지치기 되어 잘려나간 가능성 따위는 모른다. 아카데미에 가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아카데미에 가지 않고도 행복해지는 미래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11살의 나는 아카데미로 갈 것이고, 잃어버리는 것의 슬픔을 배우고, 좋아하는 것은 좋아할 수 있을 때 좋아한다고 말하는 법을 익히고, 그래서..."친구들이 기다릴거야."
내 생각인데, 11살의 나.
내가 음악을 포기했더라도 그 애들은 날 좋아해줬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나도 변하는 거겠지. 이번에도 좋아할 수 있을 때 좋아한다고 꼭 말해줘. 너와 나의 소중한 친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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