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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로렌시오 16살, 겨울] 로미에 대한 부록
    플로렌시오 로그/개인 로그 2023. 8. 30. 03:25

    이름: 로미 (리테가 부르는 애칭인 '플로미'에서 '로미' 부분만을 떼왔다)

    외견: 갈색 머리카락, 푸른 눈동자, 흠집과 얼룩으로 렌즈가 더러운 커다란 안경, 회갈색 로브, 다소 구부정한 자세, 짐 중에 포함된 아코디언.(연기수업을 많이 들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연기가 어설프다)

    그 외: '로미'에 대해서는 친구들에게는 딱히 비밀이 아니지만 연기 수준을 지적받으면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로미에 대한 것은 러닝 중 자유롭게 설정해 주셔도 됩니다.(ex. 지나가다가 로미에 대해서 들었다 그거 너지, 마지막 스텔라들에 대한 노래 뿌린 거 너냐, 등등)

     

     

     눈이 녹았다.

     언제나 눈이 오고, 또 눈이 쌓여있다는 걸 전제로 물류의 유통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의 이동동선이 짜여져있는 천계였으나 전 세계에서 이상현상이 발견되기 시작한 이래로 눈이 녹는 지방이 생겼다. 작게는 길이 진창이 되거나 눈이 녹았다 얼어붙은 길이 빙판길이 되거나 하는 정도에서 그쳤지만, 크게는 만년설이 쌓인 골짜기의 눈이 녹아 대형 산사태가 일어났다거나 하는 사태도 잇달았다.

     얼룩과 흠집으로 거의 흰색으로 보일 법한 렌즈가 끼워진 커다란 안경을 쓴 갈색머리의 청년은 말없이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무릎 위에는 잘 접어 펼쳐지지 않게끔 벨트로 고정한 아코디언이 올려져 있어서, 길거리 악사라고 소개하면 누구나 믿을법한 인상이었다. 그런 이의 곁으로 중년인이 다가와 다소 난폭하게 어깨를 흔들며 이름을 불렀다. 멀리서부터 이름을 부르며 오고 있었음에도 대답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짜증이 조금 묻어나고 있었다.

     

     "로미, 로미!"

     "아, 헉, 네!"

     "뭘 그렇게 한 눈을 팔고 있어?"

     

     하마터면 들고 있던 아코디언을 떨어뜨릴 뻔한 앳된 청년은 안경을 고쳐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질이 썩 좋지는 않아도 튼튼한 옷감으로 지어진 회갈색 로브가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앉아있을 때보다도 키가 커 보이는 이였다.

     

     "여기도 이상현상의 피해가 심하구나, 싶어서요..."

     "요즘 안 그런 데가 있는가? 다 그렇지, 무얼."

     "하하... 그것도 그렇긴 하네요..."

     

     청년의 자세는 다소 구부정했고, 아코디언을 들고 있지 않은 때에도 어깨가 안으로 말려들어있어서 다소 소심하고 주눅든 인상을 주는 이였다. 그렇게 보이는 것과 다르게 청년은 막상 대화를 나눠보면 넉살도 좋았고, 가끔 짓궂을 정도의 장난기를 보이기도 했다. 거기다 가끔씩 그 자리의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부분을 찌르는 듯한 답을 제시하거나 강단 있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중년인이 보기에 '로미'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년에게는 사정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그 사정을 굳이 캐묻거나 해서 청년을 잃는 것은 당장 큰 손실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게, 청년은 스텔라의 증표인 펜던트를 지닌 정식 마법사였으니까. 얼마 전 골짜기 눈사태 때에 휘말린 모녀를 마법으로 구조해 온 것을 시작으로 그 피해로 인한 복구 작업을 마법으로 일일이 거들어주고 있는 고마운 이이기도 했다. 마을 회의에서는 정에 약한 듯 보이고 다소 어수룩한 면도 있으니 귀여운 여자아이라도 하나 붙여주면 정착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농담 삼아 오갈 정도이기도 했다.



     "복구 상황은 어떤가요?"

     "자네가 도와줘서 훨 낫지! 이제 저 쪽에, 다시 눈이 쏟아지지 않게끔 방비만 잘하면 될 것 같더라고."

     "다행이네요. 다치신 분들의 상세도 괜찮으시구요?"

     "심각한 상처야 의사들이 돌볼 수밖에 없지만 자잘한 것들은 자네가 다 봐줬지 않나. 자네 어디서 간호사라도 했는가?"

     "아뇨... 친구가, 의사 지망생이라, 같이 있다보니."

     

     로미는 어물어물하는 목소리로 말을 얼버무렸다. 중년인은 숨기는 사정이 있으려니, 하고도 답답하게 생각하면서도 락테아 아카데미 출신의 스텔라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싶은 이해심을 동시에 가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골짜기 길은 한동안 쓰시지 않는 게 좋겠어요."

     "그건 또 왜? 거기 말고는 한참 돌아가는 길 밖에 없는데..."

     "눈사태가 한 번 일어난 곳은 두 번이라고 일어나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요. 물길도 한 번 생기면 바꾸기가 어렵잖아요. 아마 눈이 녹으면서 골짜기 위쪽에 눈에 덮여있던 바위나 나무뿌리 같은 게 드러났을 거예요. 그 부분을 제대로 확인해서 조치하지 않는 한은 눈사태는 언제고 다시 벌어질 겁니다."

     

     중년인은 아까까지 어물거리고 흔들리는 목소리 대신, 노래할 때처럼 곧고 올바른 목소리로 말하는 로미를 잠깐 쳐다보았다. 로미가 그런 중년인에게 이상함을 느끼고 돌아볼 찰나에 중년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좋아, 그렇게 함세. 별 수 있나. 마법사님의 권고신데."

     "아니, 제가, 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니까요..."

     

     다시 자신 없는 태도로 꼬물거리는 로미의 등을 중년인이 팡팡 두드렸다. 로미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로미가 말한 대로 골짜기에 올라가서 점검하는 절차도 필요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마법사를 초빙하여 해결하기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해결까지 이런 어린아이 손에 맡겨서야 쓰겠나...'

     

     중년인은 로미의 정체에 대해서 눈치챘지만 굳이 말을 두 번 얹지 않았다.

     

     "돌아다니려면 체력 좀 더 붙이게! 거 비실비실해가지곤!"
     "노, 노력하겠습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선셋한테 연기 지도나 받을걸."

     

     로미, 플로렌시오는 자신의 몫으로 받은 방으로 돌아와 방음 마법을 걸며 투덜거렸다. 실제로, 극단에 자주 다니는 친구들이라면 자신의 연기 수준에 대해서 한탄하거나 조언하거나 할 것이 자명했다.

     

     "오래 있으면 다 티 나는데 갑자기 이렇게 되니까 도망갈 수도 없고... 에이, 모르겠다. 비밀로 해주시겠지. 좋아 보이시는 분이었고."

     

     아니면 가짜 신분... 하나 더 연구해서 제대로 만들자... 꿍얼거리던 플로렌시오는 안경을 벗어서 탁자 위에 올려둔 다음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우연히도 지나가던 곳이, 우연히도 이상현상으로 인한 재해에 휘말려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고 아직 그 앞까지 도착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옆길이 갑작스러운 눈사태로 인해 통제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러 달려온 파발에게 제일 먼저 소리치듯 물은 것은 플로렌시오였다.

     

     "거기가 어딘가요!"

     "예?"

     "플, 아니, 로미!"

     "괜찮아요, 아저씨. 아저씨는 상단 일정이 있으시니까 맞춰서 움직이셔야 하잖아요!"

     

     말을 빌릴 정도로 먼 거리는 아니었기에 플로렌시오는 자신의 배낭을 끈으로 여러 번 묶어 짐이 떨어지지 않게 고정한 뒤 등에 걸머졌다. 그리고 단숨에 도약 마법을 걸어 파발이 달려왔던 길을 거슬러 나아갔다.

     

     "세상에, 마법사입니까?"

     "아, 네. 그렇지요."

     "마법사까지 고용하고 계신다니 꽤 큰 규모의 상단이신가 보군요."

     "하하하..."

     

     플로렌시오의 부모님이 아는 상단의 상행주이자 플로렌시오에게는 곧잘 아저씨라고 불리기도 하는 남자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골치 아파하는 표정을 손바닥 아래로 숨겼다.

     

     '나 원, 그 부모에 그 아들이라더니...'

     

     플로렌시오는 자신이 떠나온 곳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은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리고 알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사건현장에 아낌없이 자신의 힘을 보탰다.

     다행히도 눈사태가 일어났을 때 골짜기를 지나던 인원은 적었고, 대부분이 골짜기를 빠져나간 상태에서 눈사태가 벌어졌었지만 대규모의 눈이 쏟아지면서 마차가 파손되거나 놀란 말에 치이거나 하는 자잘한 사고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후미에서 걷고 있던 모녀였다. 모녀는 눈사태의 끄트머리 즈음에 위치해 있던 탓에 눈무더기에 휩쓸려 갇힌 상황이었다. 마침 그때는 해가 지는 때였고 시간이 지나 기온이 떨어지고 눈이 얼면 더욱 구조가 힘들어질테니 빠른 구조가 시급했다.

     그 때 마침 도착한 플로렌시오는 사정을 짧게 듣고서 바로 구조를 도왔다. 도왔다, 고는 말해도 거의 졸업 직전까지 단련된 마법사의 힘이었다. 구조 작업은 오롯이 플로렌시오의 손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천만다행으로 모녀는 보기보다 얕은 곳에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에 플로렌시오는 모녀를 구하자마자 할 수 있는 조치를 전부 시행했다. 혹시 싶어서 들어둔 의학 수업과 의학 수업을 자주 듣는 친구들에게 물어둔 대처 방법들이 꽤 유효했다.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마법으로 메꾸자 재난에 휘말렸던 사람들은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고, 플로렌시오는 그 이후의 대처를 하고 상세를 살필 겸 마을에 남았다. 이렇게 오래 남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에구, 내일, 아니, 이틀, 아니... 사흘 안에 정리하고 떠나야지."

     

     플로렌시오는 오른손을 들어 올려서 떠날 수 있을만한 날짜를 손으로 대충 꼽아보다가 팔을 툭 떨어뜨렸다. 랑누이와 블루벨에게 감사 편지라도 써서 다음에 들르는 도시에서 부쳐야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할 수 있는 것은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손 닿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스스로의 마음에는 무거운 바윗덩어리가 얹어진 것만 같았다.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역시 이대로 괜찮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며 플로렌시오는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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