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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로렌시오 11살] 1 HIT! 2 HIT! 쓰리 강냉이!
    플로렌시오 로그/개인 로그 2023. 9. 26. 20:51

    "여자애가 그렇게 성질이 나빠서 어디다 쓰냐!"
    "예?"

    수업과 수업 사이에 이동하던 중, 플로렌시오는 식당에서 포장해와서 입에 물고 있던 샌드위치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래서 플로렌시오의 발음은 부정확했고, 솔직히 말해서 앞에 있는 상대에

    대해서 예의라곤 전혀 갖추고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대답은 '엥?'과 '예?'에다 어이없는 웃음소리까지 섞여서 실제로는 '옣?'에 가까운 소리가 튀어나왔다.

    "너, 너, 어제 나한테 그런 말이나 해놓고!"
    "무슨 말, 아, 네..."

    그러고보니 어제 말을 걸어서 '봐달라'고 말했던 선배가 이 선배였나, 플로렌시오는 귀찮게 됐다는 생각에 쓰고 있던 안경이나 다시 고쳐썼다. 적당히 들어주고 가든가 해야지, 플로렌시오는 딱 세 번만 말을 듣기로 했다.

    "귀귀귀엽게 생겨서는 성깔머리하곤! 남자들한테 인기 없어도 좋냐!"

    전면 철회. 그냥 갈걸. 플로렌시오는 이제 거의 띠꺼운 표정을 숨기지도 않은 채 입을 다물었다. 아, 샌드위치 아까워, 한 입 밖에 못 먹었는데, 플로렌시오는 머릿속으로 딴 생각을 굴렸다. 집중하고 있으면 표정 관리에 실패하거나 엄청 웃다가 딱 정색하게 되거나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하게 될 것 같아서였다.

    "나, 나한테 그런 말이나 하고, 귀, 귀여우면 단 줄 아냐?!"
    "아니..."

    생각해보면, 자기의 차림새를 보고도 여자냐 남자냐 크게 묻지 않았던 동기들이 참 예의가 바른거였다. 그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으며 플로렌시오는 떫은 얼굴로 앞에 있는 선배의 환상을 깨부쉈다.

    "저 남잔데요, 선배."
    "... 뭐?"
    "남자예요, 남자. 여자 아니고요."
    "뭐, 하지만 옷, 머리,"
    "취향이거든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의 얼굴이며 머리카락을 번갈아서 손가락질하는 것을 보며, 플로렌시오는 아주 잠깐 그 손가락을 콱 깨무는 상상을 했다. 사람을 다치게 하면 안된단다, 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이 머릿속에서 서라운드 재생되지만 않았어도 실천에 옮겼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제가 여자여도 선배같은 사람은 싫어요."
    "뭣,"
    "귀여운 여자아이한테 져달라는 소리나 해야하는 선배는 좀 최악이지 않나 싶고요... 아, 혹시 저 말고 다른 친구들한테도 그런 식으로 접근하실 건 아니죠? 설마?"

    플로렌시오는 귀엽고 상냥하기 그지없는 무해한 얼굴을 하고 선배를 순살로 만들 각오를 굳혔다. 자근자근 밟아놓고야 말겠다. 재기 불능이 될 정도로 꺾어주겠다. 플로렌시오는 어제로 끝난 줄 알았던 전투력을 다시 한 번 상승시켰다.

    "세상에 어떤 귀엽고 능력있는 여자애가 선배한테 져주기까지 하겠어요? 그거 다 큰 꿈이에요."
    "그리고 저만큼 귀여우면 선배 아니더라도 만날 사람 많거든요? 저희 동기들 중에서도 멋지고 예쁘고 귀여운 친구들 많은데 굳이... 저보다 나이 많은 선배랑요?"
    "물론 제가 귀여워보이는 건 잘 알겠지만, 죄송한데 선배는 제 취향에서 한참 벗어나신 분이셔서요."
    "아, 혹시 선배 이상형이 자기 말이면 껌벅 죽는 귀여운 여자인가요? 음, 그러신거면, 유감스럽게도... 좀... 그렇지 않을까... 아, 제가 얼굴을 좀 뚫어지게 봤나요? 죄송해요, 버릇이라서."
    "하지만... 음, 선배한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닐거예요. 힘내세요. 세상엔 취향 다양한 사람이 많다잖아요."

    플로렌시오는 앞에 있는 사람이 집에서 연습용으로 자주 두들기곤 했던 나무인형 내지는 짚인형이라고 생각하며 마음 속으로 펀치를 날렸다. 1 HIT! 2 HIT! 쓰리 강냉이! 물론 입으로는 그 이상의 정신 공격을 날려대곤 있었지만. 그리고 플로렌시오는 사뭇 다정한 얼굴로 쐐기를 박았다.

    "저라서 봐드리는거예요, 진짜로. 제가 정말정말정~말로 너그럽고 착하고 귀여운 후배니까 아무말도 안 하고 넘어가는거라구요. 선배는 저한테 아~무 말씀도 안 하셨고요, 저도 아~무런 (헛)소리도 못 들은거예요."

    플로렌시오는 귀여운 외모를 한껏 살려서 무해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이렇게 귀~여운, 아주아주 귀~여워서 여자애로 착각할법한 후배의 말이니까 당연히 들어주시겠죠? 네, 선배?"

    그 뒤로 선배와 플로렌시오는 마주칠 일이 없었고, 플로렌시오는 17살이 되어서 그 이야기를 꺼내기 직전까지도 싹 까먹고 있었다. 그리고 또 조금 있으면 잊어버릴 예정이다. 이상이 플로렌시오 인생에 있었던, 최초로 받아본 고백의 전말이었다.
    참고로 최초로 받아본 고백 이야기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그랬다간 예쁘고 곱고 하여간 세상에서 제일 귀한 친구들이 괜히 시간 낭비 힘 낭비 해가면서 그 선배를 없애버리러 갈 것 같아서였다.
    플로렌시오는 매우 정상인이었으므로 늘 팔은 안으로 굽었다. 바깥으로 굽는 일 따위는 없었다. 특히 친구들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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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얗게 생략된 문자: 예+ㅎ의 합성... 표시가 안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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