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박 덩굴 장식이 들어간 편지, 나인 레이븐에게.플로렌시오 로그/16살이 16살에게. 2023. 9. 15. 02:32
(*해당 편지는 플로렌시오가 16살 겨울방학에 보낸 편지입니다. 답장은 주셨다고 날조하셔도 괜찮고, 안 주셨다고 날조하셔도 괜찮습니다. 편지와 선물을 받아서 임의로 처분하셨다고 해도 괜찮으며 아예 안 읽었다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편지를 보냈을 거다~ 에 대한 기록로그에 가까우므로 편지를 받은 이후의 부분은 완전히 자율에 맡기겠습니다. 날조 환영하며 17세 이후에 해당 편지에 대해서 언급하시는 내용은 뭐든 맞춰드립니다.)
(*중간중간의 옅은 글씨는 실제로도 좀 흐릿하게 쓴 것이 맞으며, 더러는 지웠거나(취소선)한 흔적이 보이는 글줄입니다.)
(*레이븐에게 보낸 편지는 은박 덩굴 장식이 들어간 아이보리색 편지지입니다. 편지봉투도 같은 디자인입니다.)
(*레이븐에게 동봉한 선물은 '은제 머리핀'입니다. 플로렌시오는 바람이나 물결을 형상화한 무늬라고 봤지만 실제로는 그냥 그런 느낌의 부정형 무늬가 겹쳐져있는 모양입니다.)
의외로 짖궂은 면이 있는, 나인 레이븐 귀하.
가끔 귀하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르곤 합니다. 지금에 와서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저와 거의 비슷하지만, 처음 뵈었을 때의 귀하는 굉장히 작으셔서 나이보다 두어 살 정도 어려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비슷한 체격이었던 비벤은 그래도 뽀얀 인상이었던 것에 비해 귀하는 굉장히 마른 편이시기도 했었으니까요. 대화를 나누었던 처음엔 다소 놀라기도 했었습니다. 어조나 억양이 다채로운 것 이상으로, 마치 서로 다른 사람이 한 목소리를 통해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처음에 귀하께서 대면한 사람을 거울에 비추듯이 말씀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조금 더 지나고보니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요. 귀하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직접 들은 적은 없는 것 같지만... 필시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었겠지요. 언젠가, 그래도 괜찮다면, 귀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귀하께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야기의 여부와 관계없이 귀하와 저는 친구이며, 저는 귀하에게 친구인 플로렌시오이고 귀하 또한 저에게 친구인 나인 레이븐이니까요. 친구 맞지? 라는 말은 안할게. 나는 늘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내다보니 귀하께서는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짖궂으실 때가 종종 있으신 것 같았습니다. 그런가하면 밤에는 간혹 친구들을 위해 야식을 요리하기도 하시고, 그런가하면 또 친구들과의 대련이나 대화를 즐기기도 하셨죠. 새삼스러운 말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귀하를 지켜보는 건 늘 즐거웠습니다. 일단 예쁘기도 하니까 말이야.
난 긴 머리가 좋은가봐, 역시. 내년엔 나도 다시 머리 길러야지.저는 그런 것까지 포함해서 귀하와 함께 있을 수 있던 점이 기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 했었던 말을 사과하고 싶어요.여기에는 네가 없는 걸지도 모른다는 말, 쭉 사과하고 싶었거든. 너는 프레이로 우리들에게 왔지만 앞으로는 나인 레이븐으로 남을테니까. 네가 프레이로 있을 때에도 너는 우리들을 염려했고, 같이 있었고, 함께 수업을 듣고, 많은 것을 같이 했었지. 좀 더 빨리 깨달을 수 있었다면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려나. 그렇게 길게 살아온 것도 아닌데 이렇게 가끔씩 깊은 후회가 남네. 개학하고 나면 다시 한 번 사과하고 싶어. 그 때 일에 대해서... 미안했다고. 너는 신경쓰지 않을지도 모르고, 사과를 받아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귀하가 앞으로도 머리를 길게 길러내리실지는 모르겠지만, 머리카락이 긴 것은 아무래도 관리가 불편한 점이 있으니까요. 확 잘랐더니 편하긴 하더라... 그래서 머리카락이 길 때 사용할 수 있는 은제 핀을 같이 보냅니다. 얇은 은사를 바람이나 파도 같은 무늬로 엮은 핀이라서, 그렇게 화려하는 않지만 귀하의 검은 머리카락에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은은 부정한 것을 쫓아내는 힘도 있다고 하니, 그런 부적이 되길 비는 마음을 함께 담아보냅니다.
겨울에는 해가 지고 나면 더 추워지기 마련이니, 늘 따뜻하게 하고 다니시는 걸 잊지 마세요. 햇볕을 자주 쬐어주시구요.
답장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혹은, 답장 주시지 않아도 개학 이후의 재회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천계, 눈사태로 잠시 발이 묶인 마을에서
플로렌시오'플로렌시오 로그 > 16살이 16살에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검은 뿔 그림이 그려진 녹색 편지, 하룬 이스칸다르에게. (0) 2023.09.15 마가렛이 그려진 분홍색 편지, 플로리아에게. (0) 2023.09.15 파스텔톤의 하늘색 편지, 프레데리크 뱅상 딜런에게. (0) 2023.09.14 나무가 그려진 아이보리색 편지, 콘벨라리아 페리도트에게. (0) 2023.09.14 엷은 민트색 편지, 채시티 에이드리엔에게. (0) 2023.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