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붉은 밀랍으로 봉인한 편지, 노노스 카르데나스에게.플로렌시오 로그/16살이 16살에게. 2023. 9. 2. 03:55
(*해당 편지는 플로렌시오가 16살 겨울방학에 보낸 편지입니다. 답장은 주셨다고 날조하셔도 괜찮고, 안 주셨다고 날조하셔도 괜찮습니다. 편지와 선물을 받아서 임의로 처분하셨다고 해도 괜찮으며 아예 안 읽었다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편지를 보냈을 거다~ 에 대한 기록로그에 가까우므로 편지를 받은 이후의 부분은 완전히 자율에 맡기겠습니다. 날조 환영하며 17세 이후에 해당 편지에 대해서 언급하시는 내용은 뭐든 맞춰드립니다.)
(*중간중간의 옅은 글씨는 실제로도 좀 흐릿하게 쓴 것이 맞으며, 더러는 지웠거나(취소선)한 흔적이 보이는 글줄입니다.)
(*노노스에게 보낸 편지는 옅은 미색 편지지입니다. 편지봉투도 같은 옅은 미색이나 붉은 밀랍을 녹여서 밀봉하였습니다.)
(*노노스에게 동봉한 선물은 '붉은 머리카락에 파란 눈을 가진 여주인공이 나오는 로맨스 소설'입니다. 플로렌시오는 보낼 당시에는 덜 읽은 탓에 잘 몰랐지만, 해당 책의 2장 즈음부터는 락테아 아카데미가 배경이라 마지막 스텔라들의 이야기를 참고해서 쓴 게 아닐까 싶은 소설입니다.)
소설의 여주인공처럼 아름다운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노노스 카르데나스 귀하.
전에 카르데나스 공연을 봤을 때는 제 모습이 달랐던 때라, 귀하의 부모님이 저를 알아보실 방법이 없으셨겠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저를 알아보셨습니다. 아마 귀하가 저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써서 전달하시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티켓을 사서 보러간 거였는데, 나중에 티켓값을 돌려주시겠다는 말씀을 해서 거절하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어른의 말씀이니 거절하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친구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극단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건 또 말이 안된다 싶어서요. 치열한 싸움이었습니다. 승자도 패자도 없었어요. 그래도 결과가 궁금하실테니 덧붙이자면 티켓값은 돌려받았습니다. 대신이라기엔 뭐하지만 카르데나스 공연 중간에 어느 부분에서 악단 사이에 끼어서 잠깐 악기 연주를 해드렸었습니다. 솔직히 카르데나스 공연 어디에 내가 완벽도를 보태겠어? 일단 칭찬은 해주시긴 했는데 쥐구멍에 숨고 싶더라. 살려줘 노노스...
제가 아카데미를 출발할 때 귀하 또한 짐을 싸서 아카데미를 나서시는 것 같았는데, 덕분에 이 편지를 보내야하는 곳을 어디로 정해야할지 고민이 컸습니다. 하지만 늘 세계 각지를 여행중인 카르데나스 극단 앞으로 보내는 것도 언제 편지가 도착할지 모르는 일이고요. 귀하께서 카르데나스로 향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 편지는 여전히 아카데미로 발송합니다. 못해도 개학식 날에는 우편함을 열어보시겠지요. 그 경우 답장은 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만약 귀하께서 여행중이시라면, 오히려 이 편지를 확인하시는 것보다도 더 빨리 마주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게는 의외의 기쁨이 될텐데, 어떻게 될런지는 모르겠네요.
진로를 확실하게 결정하고 나서 다시 보게 된 카르데나스 공연은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무대를 이루는 모든 요소들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배경미술, 효과음, 공연자들, 그 모든 호흡이 맞아떨어져서 생기는 최고의 예술. 덕분에 연주자로 잠깐 끼었을 때는 손이 떨려서 참 큰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실수하는 일은 없었지만요. 그 자리에 있으면서 공연으로 관객을 열광시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되돌아볼 수 있었으니 제게도 무척이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역시 티켓값 안 돌려받았어야했는데.동봉하는 선물은 인간계 서점에서 발견한 책입니다. 요즘 인기인 연애 소설인 것 같더라구요. 극단에서 극으로 올린다는 이야기도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제가 산 이유는 그런 것보다도 표지의 주인공 머리색을 보니 귀하의 머리카락 색이 생각나서였습니다. 아쉽게도 이 책의 주인공의 눈색은 푸른색이지만요. 학기 중에 밝은 성격의 여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나기도 하네요. 이 소설의 여주인공도 그런 점에서 귀하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지금 어디에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모쪼록 당신과 당신을 걱정하는 이들을 위해서 건강히 그리고 조심히 여행하셨으면 합니다.
답장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혹은, 답장 주시지 않아도 개학 이후의 재회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인간계, 어느 서점 앞 벤치에서
플로렌시오'플로렌시오 로그 > 16살이 16살에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선지처럼 검은 줄이 들어간 하얀 편지, 라나이 솔데 칸틴에게. (0) 2023.09.02 녹색 잎사귀 그림이 그려진 편지, 다에바 라케누에게. (0) 2023.09.02 옅은 하늘색 편지, 네모스 필라에게. (0) 2023.09.02 레몬 향기가 나는 편지, 나나 테스카에게. (0) 2023.09.02 특징 없는 하얀 편지 봉투, C.S 데이지에게. (0) 2023.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