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오선지처럼 검은 줄이 들어간 하얀 편지, 라나이 솔데 칸틴에게.
    플로렌시오 로그/16살이 16살에게. 2023. 9. 2. 06:08

    (*해당 편지는 플로렌시오가 16살 겨울방학에 보낸 편지입니다. 답장은 주셨다고 날조하셔도 괜찮고, 안 주셨다고 날조하셔도 괜찮습니다. 편지와 선물을 받아서 임의로 처분하셨다고 해도 괜찮으며 아예 안 읽었다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편지를 보냈을 거다~ 에 대한 기록로그에 가까우므로 편지를 받은 이후의 부분은 완전히 자율에 맡기겠습니다. 날조 환영하며 17세 이후에 해당 편지에 대해서 언급하시는 내용은 뭐든 맞춰드립니다.)

    (*중간중간의 옅은 글씨는 실제로도 좀 흐릿하게 쓴 것이 맞으며, 더러는 지웠거나(취소선)한 흔적이 보이는 글줄입니다.)

    (*라나이에게 보낸 편지는 오선지를 연상케하는 검은 장식줄이 들어간 하얀 편지지입니다. 편지봉투도 같은 디자인이고 겉봉에는 진짜 오선지라도 되는 것처럼 항구에서 들었던 뱃노래의 한 대목을 간단하게 스케치하였습니다.)

    (*라나이에게 동봉한 선물은 '높은음자리표 모양을 한 검은색 귀걸이'입니다. 특이하게도 한 쌍이 아닌 한 짝으로만 이루어진 귀걸이이며 크기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입니다.)

     

     

    우연히도 비슷한 꿈을 갖게 된 동지, 라나이 솔데 칸틴 귀하.

     

    이번에는 목표가 한결 더 명확해져서인지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노래를 들었습니다. 민요, 대중가요, 저야 못 들어가지만 주점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노래 같은 것도요. 개인적으로는 용계 항구에서 들었던 뱃노래가 인상 깊었습니다. 몰랐는데, 뱃노래에서 '그녀'나 '그 여성'이라고 칭하는 건 배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더라구요. 이런 건 엔샤가 잘 알까 싶기도 하고, 다른 용족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재밌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굳이 배에 성별이 필요한가 싶기도 하고... 왜 배가 남자로는 표현되지 않는건가 싶기도 하고... 이 부분은 멘카르에서 고민할 부분인가?

    뱃노래에 관심을 가지고 항구에서 귀기울여 듣고 있었더니, 제 키를 보고 성인이라고 착각한 선원분들이 진짜 뱃노래를 들려주시겠다며 주점으로 데려가시려고 한 일도 있었습니다. 빠져나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께서 친절하게도 항구에서 노래를 불러주셔서 원없이 노래를 들었습니다. 꽤 유명한 배의 선원분들이셨는지 조업은 진작 끝났고 귀가를 해야할만큼 늦은 저녁이었는데도 지나가던 분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노래를 부르시는 통에 항구 하나가 축제를 벌이는 것 같은 모양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흥이 오른 몇 분은 간이 테이블을 가져다놓고 술을 드시거나 음식을 나눠드시더라구요. 정겨운 분위기라 저도 모르게 그 사이에 끼어서 노래하고 춤추기도 했습니다. 음유시인이 된다면 이런 일이 일상이 될까요? 하지만 역시 술은 좀 그런데 이 부분 어떻게 안되려나. 아니면 내가 익숙해져야하나.

    이 뱃노래에 관해서는 개학하면 들려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드디어 누구의 앞에서 노래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부끄럽게도, 데네브를 떠나온 이후로 저는 늘 노래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가 연주하는 음악은 좋아했으니까요. 귀하께서 연주하시는 음악들에 꽤 많은 위안을 얻었습니다. 이 편지를 빌어서나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래서 조금 진부한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높은음자리표 모양을 한 귀걸이를 보니 이것말고는 다른 게 떠오르지 않을 것 같다 싶더라구요. 그래서 이걸 첨부해서 보냅니다. 귀하의 귀에 장식하면 연두색 머리카락 사이에서 좋은 포인트가 되어줄 것 같아요.

    저는 돌아다니면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노래하는 법을 새로 몸에 익히는 중입니다. 같은 음악가의 꿈을 가진 귀하께만 몰래 먼저 말씀드리는거지만, '로미'라는 이름을 쓰는 음유시인 이야기가 들린다면 그건 제 이야기일 거랍니다. 아직 자작곡은 하나도 불러본 적 없지만, 개학 전에는 부를 수 있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이야깃거리가 하나 더 생길 수 있도록요.

    이전에 들렀던 요정계는 생각보다 더 온화한 날씨였는데, 귀하께서 현재 어디에 계실지는 몰라도 부디 추위에 건강 해치시지 않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무리도, 감기도 똑같이 목에 나쁘니까요.

    답장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혹은, 답장 주시지 않아도 개학 이후의 재회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용계, 떠들썩해진 항구의 계단참에 앉아서
    플로렌시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