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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옅은 하늘색 편지, 네모스 필라에게.
    플로렌시오 로그/16살이 16살에게. 2023. 9. 2. 01:53

    (*해당 편지는 플로렌시오가 16살 겨울방학에 보낸 편지입니다. 답장은 주셨다고 날조하셔도 괜찮고, 안 주셨다고 날조하셔도 괜찮습니다. 편지와 선물을 받아서 임의로 처분하셨다고 해도 괜찮으며 아예 안 읽었다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편지를 보냈을 거다~ 에 대한 기록로그에 가까우므로 편지를 받은 이후의 부분은 완전히 자율에 맡기겠습니다. 날조 환영하며 17세 이후에 해당 편지에 대해서 언급하시는 내용은 뭐든 맞춰드립니다.)

    (*중간중간의 옅은 글씨는 실제로도 좀 흐릿하게 쓴 것이 맞으며, 더러는 지웠거나(취소선)한 흔적이 보이는 글줄입니다.)

    (*네모스에게 보낸 편지는 옅은 하늘색 편지지입니다. 편지봉투도 같은 디자인입니다.)

    (*네모스에게 동봉한 선물은 '네모필라 조화가 펜대 안에 들어있는 유리 펜대'입니다. 조화의 크기는 새끼손톱만한 정도이며 촉을 기성품으로 갈아끼우는 것으로 깨질 때까지 사용 가능한 물건입니다. 이 물건에 플로렌시오가 추가로 강화마법을 더 걸어서 동봉하였습니다.)

     

     

    우아하고 다정한, 네모스 필라 귀하.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 벌써 몇번째인지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귀하께서 제 편지에 인내심을 가지고 성실히 응답해주셨다는 뜻이겠지요. 여행을 마치기 전에 편지를 보관할 수 있는 예쁜 상자를 몇 개 더 사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상자와 함께 리본을 같이 사서, 오래 보관할 편지들을 넣은 다음 리본으로 묶어서 넣어두면 나중에 꺼내서 열어봤을 때 마치 과거에서 미래의 저한테 보내는 선물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귀하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나중에 리본을 함께 골라주시겠어요?

    저는 이번 방학에도 여행을 계속하는 중입니다. 집에 아예 들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아주 잠깐 있었을 뿐이라 부모님이 약간 서운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 방학 때는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고민이 되다가도 각 지역에서 일어나는 재난 소식을 들으면 이대로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에 어느새 문을 열고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더군요. 포기했습니다. 이렇게 사는 인생도 있는 거겠죠. 대신이라기엔 좀 그렇지만 안전에는 신경쓰고 있습니다. 걱정마세요. 덧붙여 지금은 인간계에 있습니다.
    아카데미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우리들'에 대한 소식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습니다. 장황한 소식의 마침표마다 우리에 대한 기대가 묻어납니다. 정작 우리는 아직 아카데미를 졸업하지도 못한 입장인데도 말이죠. 아, 우리가 특별히 우수한 아이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기대마다 이 재난들에 대한 불안감과 초조함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서 속이 편하지가 않습니다.

    이번에는 귀하에게만 먼저 알려드리는 사항이 아니기는 하지만, 내년부터는 페크다로 반을 옮겨갈 생각입니다. 돌아다니려면 첫째도 체력이고 둘째도 체력이더군요. 물론 저 정도 되는 체력이라도 일단 평균, 혹은 그 이상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지만 체력은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정신력도 체력에서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고요.

    아직도 꽃을 모으고 계실까요? 내년에는 꽃이 나올만한 가구 티켓이 좀 자주 나왔으면 합니다. 다른 가구 티켓은 말할 것도 없이 안 쓰고, 꽃이 나온다고 해도 어차피 제가 가지고 있어봐야 저에게는 큰 쓸모가 없으니까요. 솔직히 지금 기숙사 방에 있는 식물들 물 주는 것만으로도 벅차. 페리도트도 그렇고 다른 친구들은 이런 거 다 어떻게 하고 사는거야? 나랑 종족이 다르다, 진짜. 아니, 실제로 종족이 다른 식물애호가 친구들이 있긴 하지만... 진짜 대단하다...

    인간계는 아무래도 각 계로 이어지는 통로를 겸하다보니 어딜가건 새로운 물건 투성이입니다. 돈만 있다면 웬만한 것을 다 구할 수 있기도 하고요. 그것 때문에 시장에서 그렇게 불법 마도구가 많이 팔리나봅니다. 편지에 같이 보낼만한 선물을 찾으러 나갔다가 그런 것들을 발견할 줄이야. 물론 그 자리에서 신고했습니다. 끌려가면서도 상품 홍보하던데 대단하다 싶더라...

    같이 동봉하는 선물은 유리로 만든 펜입니다. 저번부터 한 생각인데, 귀하에게는 유리로 만든 물건이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머리색 때문일까요, 아니면 눈색? 그도 아니면 귀하의 성정이 유리처럼 맑고 투명해서일까요. 이제와 근본을 따지는 것은 좀 웃긴 듯 하여 생각은 그만두었습니다. 여하간, 이 펜대 안에는 새끼손톱 크기의 네모필라 조화가 들어가있더군요. 귀하의 탄생화가 네모필라 꽃이라는 걸 들었던 게 기억이 납니다. 펜대에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강화 마법을 한 번 더 걸어서 보냅니다. 무사히 도착할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는거니까요.

    겨울이 물러가려면 아직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나야할 듯 합니다. 부디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답장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귀하에게는 늘 같은 말로 맺음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낍니다.

     

    인간계, 한바탕 단속이 휩쓸고 지나간 거리에서
    플로렌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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