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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옅은 회색 편지, 레온 마티스에게.
    플로렌시오 로그/16살이 16살에게. 2023. 9. 2. 15:53

    (*해당 편지는 플로렌시오가 16살 겨울방학에 보낸 편지입니다. 답장은 주셨다고 날조하셔도 괜찮고, 안 주셨다고 날조하셔도 괜찮습니다. 편지와 선물을 받아서 임의로 처분하셨다고 해도 괜찮으며 아예 안 읽었다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편지를 보냈을 거다~ 에 대한 기록로그에 가까우므로 편지를 받은 이후의 부분은 완전히 자율에 맡기겠습니다. 날조 환영하며 17세 이후에 해당 편지에 대해서 언급하시는 내용은 뭐든 맞춰드립니다.)

    (*중간중간의 옅은 글씨는 실제로도 좀 흐릿하게 쓴 것이 맞으며, 더러는 지웠거나(취소선)한 흔적이 보이는 글줄입니다.)

    (*레온에게 보낸 편지는 옅은 회색 편지지입니다. 편지봉투도 같은 디자인입니다.)

    (*레온에게 동봉한 선물은 '여러가지 염료를 가지고 만든 천연 물감 세트'입니다. 일반 물감에서 잘 쓰지 않는 안료들로 다양하게 조금씩 색을 낸 물감 세트입니다.)

     

     

    세계예술제에 멋진 작품을 출품하셨던, 레온 마티스 귀하.

     

    지금 생각해보면 예술제의 1위 작품과 2위 작품이 거의 비슷한 시점에 접수가 되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귀하의 작품도 심오한 뜻이 있어서 솔직히 우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라나이가 제출한 작품이 총점에서 4점 정도 더 높아서 놀라웠습니다. 고작 4점 차이라니 상위권의 경쟁은 정말 약간의 차이로 1위가 갈리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게 된 때기도 했습니다.

    지금 제가 와있는 곳은 용계입니다. 어딜가나 환경이 험준한 곳이라 사람이 살기 불편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이런 곳에서도 적응해서 살아가시는 분들을 보면 감탄스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카데미에 있는 용족 친구들이 특히 대가 센가 싶은 생각도 들 정도입니다. 아 근데 지금 쓰다가 나도 모르게 데이지를 용족에 끼워서 생각하려고 했어. 아 이거 내 잘못 아냐. 아무튼 내 잘못 아님.

    여기는 이상현상 때문에 낙석 사고나 추락 사고의 빈도가 늘어난 것 같았습니다. 그도 그럴게, 이렇게 바위투성이인 곳이니까요. 어떤 마을은 낙석이 쏟아지는 바람에 유일한 길이 끊겨서 한동안 곤란을 겪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저는 그림에는 도통 소질이 없는 편이라 이 풍경을 묘사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런 현장을 맞닥뜨릴 때마다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줄로 된 글줄보다는 한눈에 들어오는 그림 쪽이 좀 더 전달력이 강한 편이니까요. 그렇다면 이 재난을 좀 더 효과적으로 알리고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귀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요.

    그런 분위기라 여기에서는 도저히 선물을 고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여행 다니던 중에 눈에 뜨인 물건을 미리 사두지 않았다면 편지 보낼 때 곤란해질 뻔 했지 뭔가요? 인간계에 있을 때 구입해두었던 물감 세트를 편지와 함께 보냅니다. 특이하게도 자잘한 보석이나 꽃잎, 혹은 나무열매 같은 것들로 색을 만든 물감이라고 하더군요. 저야 이 빛깔이 어떻게 다른지 어떤 색이 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귀하께서는 이 물감의 가치를 알아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귀하께서 보시기에 너무 싸구려같은 물건만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나중에 이 물감으로 그린 그림을 한 번 보여주세요. 물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가능하시다면 말입니다.

    겨울밤은 아직 깊으니 혹시 늦은 시간까지 작업할 일이 있으시다면, 어깨와 목을 데워주는 것을 잊지 마세요.

    답장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혹은, 답장 주시지 않아도 개학 이후의 재회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용계, 길 복구 작업이 한창인 마을에서
    플로렌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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