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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얀 레이스 손수건 같은 편지, 블루벨 이베르티에게.
    플로렌시오 로그/16살이 16살에게. 2023. 9. 2. 20:30

    (*해당 편지는 플로렌시오가 16살 겨울방학에 보낸 편지입니다. 답장은 주셨다고 날조하셔도 괜찮고, 안 주셨다고 날조하셔도 괜찮습니다. 편지와 선물을 받아서 임의로 처분하셨다고 해도 괜찮으며 아예 안 읽었다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편지를 보냈을 거다~ 에 대한 기록로그에 가까우므로 편지를 받은 이후의 부분은 완전히 자율에 맡기겠습니다. 날조 환영하며 17세 이후에 해당 편지에 대해서 언급하시는 내용은 뭐든 맞춰드립니다.)

    (*중간중간의 옅은 글씨는 실제로도 좀 흐릿하게 쓴 것이 맞으며, 더러는 지웠거나(취소선)한 흔적이 보이는 글줄입니다.)

    (*블루벨에게 보낸 편지는 가장자리를 레이스처럼 오려낸 하얀 편지지입니다. 편지봉투도 마찬가지로 접는 부분 가장자리를 레이스 모양으로 오려낸 봉투입니다.)

    (*블루벨에게 동봉한 선물은 '푸른색 토파즈를 커팅하여 장식한 귀걸이 한 쌍'입니다. 보석의 크기는 엄지손톱 정도로 작지만 보석 안쪽에는 별모양으로 컷팅된 부분이 보입니다.)

     

     

    언제나 제가 신세를 지고 있는, 블루벨 이베르티 귀하.

     

    모든 것에 앞서서, 귀하께서 경매에 출품하셨던 구급상자는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늘 감사하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전해드리고 싶네요. 여행 중에도 굉장히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어서 쓸 때마다 귀하의 섬세한 손길이나 처방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학기 중에 궁금한 거 가르쳐준 것도... 수업 받을 때 도와준 것도... 쓰고보니까 감사할 거리만 한가득이네... 물론, 감사의 말씀을 전해도 귀하께서는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 혹은 그에 맞는 대가를 지불하고 경매를 통해 구입한 건데 계속해서 감사인사를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 같은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는 아직도 그 유용함과 고마움에 감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는 것 뿐이랍니다. 부담스러우시다면, 아니, 부담스러우시다고 하셔도 별 수 없긴 하겠네요. 저는 계속 감사할테니까요.

    귀하께서는 우리들 중에서 제일 단단하고 올곧게 목표를 향해 가고 계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저만해도 제대로 된 진로를 결정하는 것에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귀하께서는 아카데미에 오기 전부터 생각하는 바가 많으셨기에 아카데미에 와서는 그 실천만이 남은 상황이셨던 거겠지요. 그런 귀하의 동기이기도 하고, 나름대로 도움을 받은 제자 같은 입장에서 귀하가 뿌듯함을 느끼실만한 소식을 몇 자 더 적어보냅니다.

    천계에서 여행할 때, 어떤 골짜기에서 크게 산사태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저는 부모님이 알고 계시는 상단에 부탁드려 그 행렬과 함께 이동중이었는데 사고가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미 짐을 챙겨서 달리고 있더군요. 어쩌면 귀하께서는 제가 무모했다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이 마법이라는 힘을 가지고도 저만의 안위를 걱정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직무태만이지 않을까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개학했을 때 잔소리는 좀 참아주라... 현장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산사태의 피해는 생각했던 것보다 적은 편이었는데, 그 적은 피해 중에서도 골짜기를 지나던 행렬의 후미에 있던 모녀가 눈더미 아래에 갇힌 게 제일 큰 문제였습니다. 시급을 다투는 문제였지요. 다행히도 제가 도착하여 구조를 서둘렀고, 귀하께서 알려주셨던 지식이 도움이 되어 모녀는 별탈없이 회복하였습니다. 제가 원래 모습 그대로 지나가던 곳이었다면 동기인 블루벨 이베르티 양이 가르쳐줬던대로 대처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귀하의 이름값이라도 높여볼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했음이 내심 아쉽기도 합니다.

    귀하께서 사시는 곳 근처에도 '로미'라는 음유시인의 이야기가 들릴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귀하께서 사시는 고향 근처로 간 적은 없긴 하지만, 말과 노래는 천 리를 하루에도 달려가는 법이니까요. 네, 그 '로미'라는 음유시인이 저입니다. 리테가 저를 부르던 애칭에서 두글자를 빌려왔으니 솔직히 개학했을 때 소문에 밝은 친구들은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야기 나오면 튀어야지. 한동안 튀어야지. 전속력으로 튀어야지.

    귀하에게는 어떤 선물을 보낼까 많이 고민했는데 마침 지나가던 곳에서 예쁘게 반짝이는 악세서리를 발견하여 구입했습니다. 귀하의 눈색을 닮은 토파즈를 메인으로 장식한 귀걸이입니다. 겉은 동그란 모양인데 보석 안에는 특이하게도 별 모양이 언뜻 보이더라구요. 마음에 드신다면 좋겠습니다.

    귀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실까요? 고향에 계실지, 아카데미에 계실지, 그도 아니면 전혀 다른 곳을 여행하고 계실지는 알 수 없지만 날씨가 아직 추우니 몸 조심하세요.

    답장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혹은, 답장 주시지 않아도 개학 이후의 재회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용계, 유명한 토파즈 광산 아래의 마을에서
    플로렌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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