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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범한 하얀색 편지, 마이너스 데일리에게.
    플로렌시오 로그/16살이 16살에게. 2023. 9. 2. 18:45

    (*해당 편지는 플로렌시오가 16살 겨울방학에 보낸 편지입니다. 답장은 주셨다고 날조하셔도 괜찮고, 안 주셨다고 날조하셔도 괜찮습니다. 편지와 선물을 받아서 임의로 처분하셨다고 해도 괜찮으며 아예 안 읽었다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편지를 보냈을 거다~ 에 대한 기록로그에 가까우므로 편지를 받은 이후의 부분은 완전히 자율에 맡기겠습니다. 날조 환영하며 17세 이후에 해당 편지에 대해서 언급하시는 내용은 뭐든 맞춰드립니다.)

    (*중간중간의 옅은 글씨는 실제로도 좀 흐릿하게 쓴 것이 맞으며, 더러는 지웠거나(취소선)한 흔적이 보이는 글줄입니다.)

    (*마이너스에게 보낸 편지는 평범한 하얀색 편지입니다. 편지봉투도 같은 디자인입니다.)

    (*마이너스에게 동봉한 선물은 '얇은 금색 안경줄'입니다. 안경알 쪽에 걸 수 있는 부분에 새끼손톱보다 작은 마정석이 매달려있습니다.)

     

     

    어쩐지 비벤과 옐레나에게 단단히 찍힌 듯한 마이너스 데일리 귀하.

     

    격식 차리는 말을 먼저 쓰는 것보다 걱정이 먼저긴 하다. 너 괜찮아...? 아니 뭐, 걔들이 강압적으로 굴 것 같진 않지만 강압적으로 굴지 않아도 사람 하나 구슬리는 것 정도는 쉬우니까... 나중에 숨을 곳 필요해지면 말해. 기숙사 방에 숨겨줄게. 마침 안 쓰는 침대도 많거든.

    음, 다시 고쳐서, 귀하께서 수확제에 부스를 내지 않은 건 의외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땐 학생 부스가 아니라 졸업생의 졸업작품 전시 부스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구요. 귀하께서는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하셨지만, 마도구 설계 방면에 문외한인 저조차도 이제 그게 겉치레에 불과한 말이라는 걸 압니다. 다만, 네모의 말대로 커피는 조금 줄이시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수 있는 때는 자는 게 좋아요. 건강을 위해서요.

    저는 지금 마계에 와있는데, 마계는 역시 열기를 막는 마도구들이 제일 다양하고 많은 것 같습니다. 적응하고 살아가시는 악마 분들도 많겠지만 천사들이 설산에 가는 것처럼, 악마들도 용암이 끓는 산에 접근해야하는 일이 많겠지요. 그런 점에서 더위로부터 몸을 지켜주는 마도구보다는 열기 자체를 막아주거나 중화하는 마도구가 좀 더 다양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도 하나쯤 사둘까 싶기도 했는데, 견딜만 하니까 괜찮아요. 취소합니다. 그냥 하나 샀어요. 저는 물론 마법을 쓰면 되긴 한데 마법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그 대비 겸.

    귀하께서 예전에 만들어주셨던 녹음용 마도구는 아직 사용하지 못한 채입니다. 이쯤 놔두다보니 한 번씩 들고 살펴보는 것이 일과가 되더군요. 덕분에 이 설계 구조에 대해서 어렴풋이 파악해보다가 귀하의 대단함만 느끼고 있습니다. 이거 몇 살 때 받았더라. 난 그 때 그냥 좀 징징대는 애였던 거 같은데, 마이너스는 참 대단해... 그 마도구는 놔두는 사이에 괜찮겠다 싶은 용도가 떠올랐습니다. 제 노래를 녹음하는 본래 용도는 아니게 되겠지만, 새 용도도 그 때 당신이 제게 주셨던 정성과 노력을 배신하는 방향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결과물을 들려드릴 수 있다면 좋겠네요.

    귀하께 보내드릴만한 선물로는 뭐가 괜찮을까 싶어서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와있는 곳이 마계다보니 더 고르기가 힘드네요. 이건 흔한 것 같고, 저건 만드실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서 그냥 안경 장식용 줄을 보냅니다. 엷은 금빛이 나는 얇은 체인인데, 안경알 쪽에 걸 수 있는 부분에 작은 마정석이 걸려있더라구요. 너무 작아서 마법을 부여하는 용도로 쓸 수 있나 싶긴 하지만 파시는 분은 아마 될 거라고 하시네요. 보통은 야간에도 책을 볼 수 있는 시야 관련 마법을 걸어서 쓴다고 합니다. 까지 쓰고 깨달았는데, 일찍 자라고 해놓고서 첨부할만한 선물이 아닌가, 이거? 하... 그래, 나는 생각 없는 천사... 락테아 호수의 물고기 같은 거지...

    밤엔 싸늘하니까 실내에서도 가디건 같은 겉옷을 늘 챙겨다니시길 바랍니다. 커피 대신 따뜻한 코코아나 뱅쇼 같은 걸 드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답장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혹은, 답장 주시지 않아도 개학 이후의 재회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마계, 어느 화산 인근에서
    플로렌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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