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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옅은 회색 편지, 일라이 레바테인에게.
    플로렌시오 로그/16살이 16살에게. 2023. 9. 12. 04:09

    (*해당 편지는 플로렌시오가 16살 겨울방학에 보낸 편지입니다. 답장은 주셨다고 날조하셔도 괜찮고, 안 주셨다고 날조하셔도 괜찮습니다. 편지와 선물을 받아서 임의로 처분하셨다고 해도 괜찮으며 아예 안 읽었다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편지를 보냈을 거다~ 에 대한 기록로그에 가까우므로 편지를 받은 이후의 부분은 완전히 자율에 맡기겠습니다. 날조 환영하며 17세 이후에 해당 편지에 대해서 언급하시는 내용은 뭐든 맞춰드립니다.)

    (*중간중간의 옅은 글씨는 실제로도 좀 흐릿하게 쓴 것이 맞으며, 더러는 지웠거나(취소선)한 흔적이 보이는 글줄입니다.)

    (*일라이에게 보낸 편지는 옅은 회색 편지지입니다. 편지봉투도 같은 디자인입니다.)

    (*일라이에게 동봉한 선물은 '숙면에 도움이 되는 향이 나는 포푸리 주머니'입니다. 향이 떨어지면 바꿔넣을 수 있게끔 교체품도 같이 발송했습니다.)

     

     

    귀여운 침낭을 선물해주셨던 일라이 레바테인 귀하.

     

    먼저 감사의 말씀을 적습니다. 그 침낭은 정말로 유용하게 쓰고 있어요. 받았던 때에서 키가 그렇게 많이 크지 않았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도 이 침낭을 쓸 수 있으려면 좀 덜 자라야할텐데, 라는 걱정도 들고요. 얼마 전에는 그 침낭을 야숙용 공터에서 꺼냈을 때 이상한 시선을 받았지 뭔가요? 전 저한테 잘 어울리고 귀여운 물건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분들이 보시기에는 '사내자식이 계집애 같은 물건을 들고 다닌다' 정도로 보이셨나봅니다. 짜증나서 마법으로 근처 나무에 한 번 거꾸로 매달았더니 조용해지시더라구요. 덕분에 그날 밤은 조용하게 잠들 수 있었습니다. 친구한테서 받은 선물이라는 건 몰랐겠지만서도, 내가 직접 사서 들고 다니는 물건이었어도 똑같은 소리를 했을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친구가 준 물건에 그런 소리를 하는 걸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어서 그만. 그 분들이야 얼마 후에 마법을 풀고 얌전히 내려드렸지만 다음날 아침에는 꽁무니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급하게 떠나셨더라구요. 솔직히 속시원했습니다.

    학기 중에도 그랬지만 레바테인 후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들릴 때마다 난감한 표정을 감출 길이 없었습니다. 오래 이어진 후작가의 외동아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 인간계의 음유시인들에게 꽤 유명한 일인가봅니다. 몬스터들에게 묻어오는 바람이야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다른 사람에게서 직접 흥미로운 소식인 것마냥 듣고 있는 건 고역이라서요. 이래서 소문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는데 음유시인으로 진로를 잡다니 나도 나다, 참... 그러고보니 귀하께서는 바람의 정령과 계약하셨었지요? 나중에 제가 제대로 제 꿈을 이루게 된다면, 귀하에 대한 소문을 바람의 정령에 대한 소문으로 덮어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 있다면요.

    선물로는 무엇을 같이 보내야할까 고민하다가 귀하께서 잠을 진짜그래도되나싶을정도로 굉장히 오랫동안 주무시는 게 기억이 나서, 숙면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포푸리를 함께 보냅니다. 아카데미에서 조합으로 만드는 것과 다르게 향이 오래가진 않겠지만 오히려 막 쓰기에는 이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해서요. 침낭이나 베개 속에 넣어도 된다고 합니다.
    겨울이니까 바깥에서 깜박 잠드는 일은 없도록 신경써주세요. 날이 아직은 춥습니다.

    답장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혹은, 답장 주시지 않아도 개학 이후의 재회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인간계, 어느 산등성이 여행자의 쉼터에서
    플로렌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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